■ 자연
아래 제시문에 나타난 여러 측면의 시간 인식을 적용하여 개인적, 사회적 관점에서 시간의 의미와 기능을 논술하시오. (1,800자 안팎으로 쓰시오.)
(가) 저기 칡 캐고 있는 그대여, 하루만 못 봐도 석 달이나 지난 듯. 저기 대쑥 캐고 있는 그대여, 하루만 못 봐도 세 철이나 지난 듯. 저기 약쑥 캐고 있는 그대여, 하루만 못 봐도 세 해나 지난 듯.
― ?시경(詩經)?
(나) 해와 달은 시간 측정에 가장 중요한 두 천체다. 태양의 출몰은 하루의 낮과 밤을 구분하고, 달이 차고 기우는 것은 한 달의 경과를 나타낸다. 태양이 같은 별자리를 배경으로 하늘에 나타나는 데에는 1년이 걸린다. (…) 낮과 밤의 끊임없는 변화 외에 원시인류의 마음을 맨 처음 차지한 것은 달의 이동과 변화였다. 달은 태양보다 먼저 시간 측정 도구로 이용된 것 같다. 초기 역법은 거의가 다 태음력이다. (…) 해시계와 같은 과학기구는 대부분 해와 달과 별들의 상대적 위치에 따라 시간을 측정하지만, 시간의 흐름은 천체를 고려하지 않아도 측정할 수 있다. 이 경우 시간은 간격으로 측정된다. 이 간격은 적당하다고 여겨지는 범위 안에서 길 수도 있고 짧을 수도 있지만, 일관된 방식으로 정확하게 측정되어야 한다. 예컨대 고대 바빌로니아와 이집트, 중국에서는 꾸준한 물의 흐름을 시간 측정의 기준으로 삼았다. 중세의 시간측정기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모래시계였다. 모래시계는 모래나 돌가루를 사용했고, 잘게 부순 달걀껍질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동아시아, 특히 중국과 일본에서는 향(香)이 시간 측정 수단으로 흔히 쓰였다. 가정에서 시간을 재는 데 도움이 되도록 향의 길이는 법으로 정해져 있었다. 나중에 나온 ‘향시계’는 천천히 타들어가는 향의 특성을 이용했을 뿐만 아니라, 후각만으로도 시간을 알 수 있는 독창적인 시간측정기를 만들기 위해 천연향을 집어넣기도 했다. (…) 우리는 시간을 측정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간이 무엇이며 시간을 계량적으로 재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이 문제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을 때는 시간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듯하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고정불변의 영원과는 달리, 어떤 길이를 가진 시간은 그 동일한 기간 안에서 더 이상 연장될 수 없는 “수많은 운동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동안 줄곧” 지속된다는 것이다. 이런 운동의 흐름 속에서 그는 이 운동이 과거로 바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고찰을 토대로 그는 숙고하기 시작한다. 영원 속에서는 모든 것이 현재인데, 시간 속에서는 과거의 모든 것이 미래에 내쫓긴 듯이 없어지고, 미래의 모든 것은 과거에 뒤이어 일어나고, 과거와 미래는 둘 다 현재에서 흘러나오니, 시간이란 참으로 묘한 현상이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자문한다. 과거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미래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면, 과거와 미래는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영원한 현재만 남지 않겠는가?
그러나 영원한 현재는 시간이 아니라 영원성일 것이다. 그러니 결국 우리가 현재만 취한다 해도 지금 실제로 존재하는 시간은 한 달의 일부인 하루, 한 시간, 1분, 1초일 뿐인데, 그것을 과연 현재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지만 현재의 1초를 규명하려고 애쓰는 순간, 그 1초도 그보다 훨씬 짧은 단위로 무한히 나뉠 수 있다는 사실을 아우구스티누스는 깨닫는다. 게다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짧은 단위의 시간조차 미래에서 과거로 순식간에 넘어가 버리기 때문에 “지속성을 전혀 갖지 못하리라”는 것도 깨닫는다. 따라서 아우구스티누스가 토로했듯이, 측정 가능한 단위로 시간을 매기려는 시도는 모두 실패로 끝날 수 밖에 없다. 시간은 일월성신(日月星辰)의 운행에 따라 결정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아우구스티누스는 동의하지 않는다. 천체의 운행뿐 아니라 어떤 물체의 운동도, 가령 물레의 주기적 회전도 시간 측정에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 실제로 아우구스티누스는 시간을 천체의 운행과 결부시키는 가설을 물리친 뒤, 시간은 영혼의 연장 또는 확장이라는 가설을 제시한다. (…) 시간을 체계화하면 시간을 통제하고 있다는 의식을 갖게 되고, 그리하여 일상생활과 사회의 중요한 부분을 통제한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달력은 대부분 해와 달의 운행과 같은 천문학적 주기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인류와 우주의 연결고리를 제공함으로써 거의 신성한 지위에 도달할 수도 있다. 아무리 단순하고 소박한 달력이라도 그것이 없으면 과거를 체계적으로 기억하거나 농사, 사냥, 종교적 의무 등과 같은 장래의 일을 계획하기가 어렵다. 달력이 부정확해서 그것의 토대인 천문주기와 보조가 맞지 않으면 사회생활에 심각한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지만, 사람들이 이미 익숙해져 있고 일상생활의 일부가 되어 있는 달력을 개혁하는 일은 엄청나게 큰 사건이다. 새로 제정한 달력이 수용되느냐 마느냐는 정치 또는 종교적 강제성과 새 달력의 사회?경제적 의미에 달려 있다. (…) 이누이트족 언어에는 시간을 가리키는 말이 없다. 적어도 서구 산업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이해되고 있는 조직적 의미의 시간에 해당하는 낱말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누이트족이 경제 활동과 시간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뜻은 아니다. 전통적인 이누이트 사회에서는 시간의 생산적 이용을 찬양했고, 시간의 활용에 따라 성과가 결정되었다. (…) 유럽문화의 요소들 가운데 오늘날의 이누이트 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기독교를 빼고는 아마도 시계일 것이다. 서양의 시간은 북극권의 이누이트 공동체에서는 문화적 변화의 상징이자 조달자였다. 평일, 수업 시간, 주말, 주일과 공휴일, 시간표에 따른 정기 항공편, 가게 문을 열고 닫는 시간, 생일, 기념일은 오늘날 이누이트족과 주변 환경의 관계나 그들 상호 간의 관계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전래의 시간 개념도 새로운 시간 개념과 더불어 끈질기게 남아 있다.
― 움베르토 에코 외, ?시간박물관 The Story of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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