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가 소혀바닥이 늘어지듯 절정을 이어가고 있을 여름의 한복판 토요일에 수박을 한 통 거의 해치우고 있을 무렵 심상치 않은 전화벨이 울려대기 시작했다. 토요일 오후의 전화는 늘 외출을 강요당하거나 약속을 정해야하는 반갑지 않은 전화였다. 전화를 받는 순간 학교 당직 선생님의 전화였다. 긴급한 목소리와 약간은 화가나 있는 전화였다. 이선생님반 학생이 119구조대에 의해 신촌 대학병원에 실려 응급실에 있다는 이야기와 소방서에서 학교에 상당히 항의를 했다는 내용의 전화였다.
'왜 입원했을까? 왜 항의를 했을까?' 궁금증이 밀려왔다.
나는 수박을 먹다가 집어던지고 차를 집어타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인천에 사는 나는 이처럼 인천에서 서울까지가 멀게 느껴지기는 처음이었다.
병원에 도달했을 때 응급실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응급실과 복도 그리고 보조의자 등 환자들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계속 실려오는 환자, 보호자, 오고가는 의사분들, 인턴들….
'얘는 어디에 있을까? 어디가 아파서 왔을까?'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고 찾고 있는데 응급실 구석 보조밀대 의자에 거의 게거품을 물고 있는 사람이 있어 직감적으로 저 얘구나하고 가까이 가보니 의식이 없이 그야말로 사지를 늘어뜨리고 뻗어 있었다. 입 주위에는 벌겋게 화상을 입은 것처럼 타 있었고 손과 목 주위까지 흉한 모습의 흉터가 나 있었다.
정신없이 오고가는 의사들 사이에서 한 젊은 의사를 붙들고 황급히 무슨 사연으로 여기에 와 있냐고 물으니, 약간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아저씨가 학생 보호자요?"
'아저씨라니, 그래 하여튼….'
"아니요 학생 담임입니다."
"뭐요, 담임이요, 학생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학교에서는 무엇을 한다는 말입니까?"
분명 무슨 일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 의사 분이 나에게 화를 내고 있었고 당직선생님이 119구조대가 화를 내더라는 이야기를 통해서 무엇인가 학교와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자살…'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하면서 나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 순간 의사 분이 하시는 말씀이
"음독했습니다. 빙초산을 마셨어요. 위세척을 하게 매점에 가서 1000cc짜리 우유 10통을 사오세요." 하면서 나를 위로 쳐다 보고 있었다. 전적으로 나의 책임이고 학교의 책임인 것처럼 매도되고 있는 느낌이었다. 빙초산? 빙초산을 마시면 식도와 위가 다 타는 데…. 왜 그랬을까?
나는 황급히 매점에 가서 우유 10통을 사다가 드렸다. 그때까지도 명훈이는 깨어나지 않고 있었다. 왜 부모님은 어디가서 안 오실까? 당직하신 이선생님이 부모님이 집에 지금 안계신다고 나 한테 직접 전화한다던 생각이 그때에서 났다.
의사 선생님이 우유를 입에다가 호스로 연신 집어넣고 한 쪽으로 다시 빼내고 있었다. 나는 그 옆에서 명훈이의 손을 꽉 쥐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담임으로서 그동안의 여러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고3인 얘가 시험을 걱정해서 자살을,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얼마나 쾌활하고 성실했는데, 아니면 여자 친구와의 문제, 아니지 그 정도 가지고 사나이가…. 하고 있을 때 의식이 점점 돌아오기 시작했다. 병원에 실려온지 거의 2시간이 지나서였다.
"명훈아, 명훈아… 정신이 좀 드니, 나야 선생님이야"
"선생니∼임, 저 어떡해요"
"어떡하다니? 어떻게 된 일인데?"
"빙초산을 마셨어요. 빙초산을 마시면 식도가 타서 죽든지, 살아도 호스로 밥을 먹어야 한대요. 화학 시간에 배웠어요"
"아니 왜 빙초산을 마셔?"
그 사연은 참으로 어이가 없고 웃기기까지 하였다.
토요일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서 부모님이 없어서 점심으로 라면을 끓여 먹다가 이빨이 목으로 넘어 갔다는 것이었다.
"아니 이빨이 넘어가다니?"
"저는 이빨이 한 두 개 부실한 것이 있는 데 자유스럽게 뺐다 박았다 할 수 있는 것이 있어요. 그런데 뜨거운 라면을 후루룩 먹다가 이빨까지 그냥 바로 넘어갔지 뭐예요. 그래서 그것을 다시 토해 낼려고 냉장고 있는 식초를 먹는다는 것이 그냥 나중에 알고 보고 빙초산이었어요."
"그런데 식초를 먹으면 토하는 줄을 알고 그것을 먹었단 말이야"
"네, 알고 보니 어머님이 음식을 조리할려고 하는 빙초산이었어요. 빙초산을 마신 후에 그냥 쓰러져 졸도를 했어요. 그리고 한참 후에 목이 타서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물을 엄청나게 마셨어요. 그리고 또 쓰러지려는 순간 119에 전화를 했어요. 그리고 의식없이 여기까지 온 것이예요. 선생님, 나 어떡해요? 호스 꽂고 어떻게 평생을 살아요?"
"어떡하긴 의사 선생님이 치료해 주시겠지. 기다려 보자꾸나."
위 세척을 한 후라 그런지 의식이 점점 살아나고 의사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차도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의사 분도 나에게 라면과 이빨 그리고 빙초산으로 이어지는 사건의 전말을 듣고는 웃음까지 내보이셨다.
한 참을 위로를 하고 있는 데 부모님이 달려 오셨다. 그리고는 전모를 듣더니 놀래시며 다행이라고 하셨다. 다행이라니 무슨 다행인가 했더니 빙초산에 물을 타서 희석시켜 놓으신 것이었다. 참으로 다행이었다. 원액을 그냥 먹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찔했다.
다시 밤 12시가 넘어서 경인고속도로를 달려 집으로 왔다. 오는 도중 싱겁기 그지없는 명훈이를 생각하며 내 이빨을 가볍게 만져 보았다.
명훈이는 2주 후 다시 학교에 나오게 되었다. 그후 명훈이의 별명은 빙초산, 또는 이빨로 불리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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