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두 글에서 공통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지적 탐구의 태도를 밝히고, 그러한 태도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실제적인 사례를 들어 논술하시오.
(가) 무노디 경은 발니바비의 수도인 라가도에서 제일 높은 계급의 인물이었고 몇 년 동안 라가도의 시장을 지냈었다. 그가 들려 준 이야기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약 40년 전에 발니바비의 몇 사람이 볼일 때문인지 심심풀이 때문인지, 허공에 뜬 섬나라 라퓨타에 올라가 약 5개월 동안 머무르면서 약간의 지식을 배운 다음 기분이 몹시 들뜬 채 돌아왔다. 이 사람들은 돌아오자마자 이제까지 행해지던 모든 운영 방식을 트집잡으며, 예능, 학문, 언어, 기술을 뜯어고쳐 새로운 토대에 올려놓을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그들은 라가도에 연구소 설립 허가를 왕으로부터 얻어 냈다. 이러한 풍조는 사람들 사이에 삽시간에 퍼져 나가 이 나라의 어지간한 도시에는 모두 이런 연구소가 세워졌다. 이런 연구소에서는 학자들이 농업과 건축술의 새로운 규칙과 방법을 생각해 내고, 한 사람이 열명 몫을 해낼 수 있는 다양한 기구와 연장을 발명하려고 했다. 가령 궁전을 일주일만에 짓고, 더욱이 그 재료는 아주 튼튼해서 영원히 수리하지 않고도 견딜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또 어떤 계절에라도 이 땅의 모든 과일을 익게 만들고, 생산량을 지금의 열 배로 증가시키며, 기타 수많은 놀라운 일을 해내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불행한 일은 이러한 계획이 어느 하나도 완성되지 못했고, 나라 전체는 황폐해졌으며, 집은 폐허가 되었고, 사람들은 굶고 헐벗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모든 결과에 낙심하기는커녕, 희망 반 절망 반으로 그들의 계획을 실현시키는 데에 수십 배 더 열심히 몰두하고 있었다.
무노디 경 자신은 그들의 방식을 따르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로부터 예술의 적으로, 반국가적인 인간으로, 자신의 안락만을 추구하고 게으름을 피우는 부류로 멸시와 냉대를 받게 되었다고 한다. 며칠 후 나는 무노디 경의 도움으로 라가도에 있는 대연구소를 구경할 기회를 갖게 되었는데, 이 연구소에는 500여 개가 넘는 연구실이 있었다. 거기서 제일 먼저 만난 연구자는 8년 동안이나 오이에서 햇빛을 추출하는 연구를 하고 있었다. 추출한 햇빛을 유리병에 집어넣어 완전히 밀폐해 두었다가 기후가 좋지 않은 계절에 방출해서 공기를 데우겠다는 것이다. 그는 8년만 더 연구하면 틀림없이 사람들의 정원에 적당한 값으로 햇빛을 공급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나에게 장담하면서, 연구 자금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투덜댔다.
나는 또 하나의 연구실에 들어갔다. 그러나 지독한 악취를 못 이겨 뛰쳐나올 뻔했다. 안내하는 사람이 속삭이는 말로 나를 달래면서, 그런 실례를 범하면 연구자들이 크게 노여워할 것이라며 나를 강제로 방에 밀어 넣었다. 그래서 나는 감히 코도 막지 못했다. 이 방의 연구자는 이 연구소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다. 그의 얼굴과 수염은 연한 황색이고, 그의 손과 옷에는 오물이 묻어 있었다. 나를 소개하자 그는 나를 꼭 껴안았다.(그런 인사는 정말 사양하고 싶었다).
그가 이 연구소에 처음 온 이래로 해 온 일은 인간의 배설물을 여러 성분으로 분류하여, 담즙으로 물든 색깔을 제거하고 냄새를 증발시켜 없애고 타액을 걸러내서 원래의 음식으로 환원하려는 연구였다. 그는 매주 연구소로부터 거의 브리스틀 술통 만한 용기에 가득 담은 인간의 분뇨를 공급받고 있었다.
또 다른 연구실에서 추진하고 있는 기획은 모든 단어를 없애 버리자는 것이었다. 이것은 건강을 증진시키고 생활을 간편하게 한다는 이점이 있다고 해서 서둘러 수행되고 있었다. 왜냐 하면 우리가 한 단어씩 말을 할 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폐가 닳아서 작아지는 것이 분명하고, 결국은 수명을 단축시키는 한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방안이 제시되었다. 즉 단어라는 것은 단지 사물을 나타내는 이름에 불과하므로, 사람들이 어떤 일에 대해 이야기하러 갈 때는, 그 일을 나타내는 데 필요한 물건을 가지고 가는 것이 더 편리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대화의 방식을 실행하는 사람들이 만나는 방에는 이런 종류의 인위적인 대화에 필요한 자료가 되는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짧은 대화를 위해서는 물건을 호주머니나 겨드랑이에 끼고 가면 충분했다.
그러나 여기에 따르는 한 가지 불편은 만약 할 이야기가 많고 다양한 경우에 그에 비례하는 만큼의 많은 물건을 등에 지고 가야 된다는 것이다. 나는 이 대화술을 사용하는 학자들이 등에 진 짐의 무게에 짓눌려 쓰러지는 것을 자주 보았다. 그들은 길에서 만나면 짐을 땅에 내려놓고 보따리를 풀어서 한 시간 가량 대화를 하다가, 끝나면 물건을 도로 거둬들이고 등에 지도록 서로 도와 주고는 작별을 고하는 것이었다. 내가 만난 또 한 연구자는 얼음에 순간적으로 열을 가해 화약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는 불의 모양을 마음대로 바꾸는 방법에 관한 논문을 나에게 보여 주면서 곧 출판할 예정이라고도 했다. 또한 아주 기발한 건축가가 있었는데, 그는 집을 짓는 새롭고 신기한 방법을 생각해 냈다. 그것은 지붕으로부터 짓기 시작해서 기초에서 끝낸다는 것이었다. 그는 벌과 거미의 집짓기를 예로 들면서 그 방법의 타당성을 나에게 설명했다.
(나) 이미 깨우쳐 얻은 것을 배우고 전하는 것을 학(學)이라 한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유(有)·무(無)·허(虛)·실(實) 및 미세한 일들에까지 학이라는 명칭을 갖지 않은 것이 없어서 각기 그 능한 바를 주장해 왔다. 그러한 여러 학 중에는 민생(民生)에 보탬이 되는 것도 있고, 해가 되는 것도 있으며, 보탬도 해도 없는 것도 있어서 여러 가지로 복잡하고 어지러웠다.
그러나 참으로 잘 선택하여 쓰면 모두 나에게 권유와 경계가 될 수 있지만, 오직 한탄스러운 것은 어떤 학을 처음 창도한 자가 그 단서를 약간만 드러내면 그것을 전하는 자가 각기 자신의 뜻을 보태고 늘여서 마침내 근본 취지를 잃어버리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 까닭을 궁구해 보면 제창한 근본 원천이 혹 어긋나 새고, 여기에 또 군더더기가 붙어 말꼬리를 잡아서 따지고 들 만한 것이 있거나, 혹은 유무와 허실의 견해가 편벽되고 막혔거나, 혹은 이기기를 힘쓰고 기이한 것을 좋아해서 점점 잘못된 곳으로 깊이 빠져들었거나, 혹은 어지러울 정도로 허황하여 붙잡기 어려운 것이 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이러한 말류의 폐단은 제쳐두고라도, 어긋나고 어지러워질 근본 원인이 이미 스스로에 내재해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어찌 학의 근본을 세우는 것이 막중하고 어렵지 않겠는가. 천하의 학문을 통괄하여 시비를 논하고 우연을 정할 때는 천하 민생이 실제로 쓰는 바와 천하의 정치가 반드시 근거로 삼는 바를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 때 붙잡을 수 있는 형체가 있고, 실제 사물에 처해서 증명할 수 있다면 이는 곧 실학(實學)이다. 이것은 버리려 해도 비릴 수 없고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다.
이 실학을 알지 못하면서 날마다 쓰는 사람은 혹 나가기도 하고 혹 들어오기도 한다. 또 보지 못하면서도 실천하는 사람은 혹 부합하기도 하고 혹 어긋나기도 한다. 그러나 형체가 없는 신(神)에 관한 이론은 그 유래가 이미 깊고, 모든 일의 조짐을 알지도 못하는 신(神)에게 돌렸다. 또 이(理)에 관한 이론은 중고(中古)때에 나타나서 모든 변화를 역시 형체도 없는 이(理)에서 탐구했다. 이 두 이론이 전해지고 널리 퍼지면서 이미 세상 사람들에게 익숙해졌고, 시대를 거치며 더욱 복잡한 설명들이 덧붙여졌다. 그런데도 그것을 배척하려는 이론은 근래에 와서야 점차 치열해졌다.
그 까닭은 세월이 흐르더라도 형체가 없는 신(神)과 이(理)에 대해서는 정확한 사실을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증명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대와 상관없이 천지를 가득 채우고 만물을 충만하게 하는 형체 있는 신(神)과 형체 있는 이(理)가 분명히 있어서 모든 일에 조짐을 보이고 온갖 변화를 일으키고 있음에랴, 성인(聖人)의 학문에 어찌 배울 바와 배우지 아니할 바가 있으리오마는 마땅히 허를 버리고 실을 취해야 할 것이다.
:: 유의 사항 ::
글의 길이는 띄어쓰기 포함하여 1,200(±100)자가 되게 할 것
원고지에 성명, 제목, 수험자의 신원을 나타내는 표시 등을 기입하지 말 것
국어 정서법과 원고지 사용법을 지킬 것
연필을 제외한 흑색 또는 청색 필기구를 사용할 것
[전남대학교 해설]
이번 문제는 이른바 '자료 제시형'이다. 자료 제시형은 주어진 자료를 얼마나 정확히 이해했는지를 평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논의의 개방성이라는 단독 과제형의 장점을 유지하면서도 주어진 자료와의 연관성을 갖추어야 한다는 제한도 가해진다는 점에서 논술 능력 측정에 매우 효과적이다.
이 때문에 많은 대학들이 논술 고사에서 일반적으로 '자료 제시형'의 문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전남대학교에서도 입시에 앞서 자료 제시형 문제 출제를 기본 방침의 하나로 확정하고 공표한 바 있다. 논술 문제의 소재는 동·서양의 고전을 포함해서 대학이 읽기를 권장할 만한 자료의 범위에서 제시하는 것을 기본적 출제 방침으로 수립했다.
자료 글 (가)는 18세기 영국의 풍자 소설가 조나단 스위프트(Jonathan Swift)의 『걸리버 여행기』(Gulliver's Travels)의 일부를 발췌하여 윤문한 것이다. 자료 글 (나)는 조선조 후기의 실학자인 혜강 최한기(崔漢綺)의 『기학』(氣學)의 일부를 발췌하고 윤문한 것이다. 두 편의 자료 글은 모두 고등 학생의 지식 수준에 적합한 것으로 판단되었다.
스위프트는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하게 알려져 있는 작가이며, 흥미로운 여행가이면서도 동시에 날카로운 사회 비판을 담고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논술의 소재로 적절한 것으로 판단했다. 최한기는 우리에게 아직은 다소 생소한 인물이기는 하지만 조선조 후기의 실학 사상을 대변하는 학자 중의 한 사람이라는 점에서 먼 거리를 갖는 학자는 아니다. 자료 글은 우리 고전과 서양의 문학 작품이라는 점에서 논술의 소재로 흔히 권장되고 있는 '동서 고전'의 범주에 든다.
이 문제는 자료 글을 읽고, 이 글들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지식 추구의 태도를 밝히고 그에 대한 학생들의 견해를 개진하라고 요구하되,이 과정에서 실제적인 사례를 활용하라는 주문을 덧붙였다. 출제자들은 이 문제가 오늘날 급속히 변화하는 지적 환경 안에서 지적 추구의 태도와 전망에 관해 학생들의 반성적 사고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적절한 논의 주제라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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