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뎅이 돌리기
싸이렌 소리가 울리면서 나는 잠깐 눈을 붙였던 낮잠이 깨어버리고 말았다. 매월 15일에 실시되는 민방공 훈련이 시작되고 있었다. 여름날의 하늘은 금방이라도 한바탕 빗줄기가 퍼부을 것 같은 위세를 드러내고, 텅비어 있는 운동장의 한가운데로 싸이렌 소리는 계속해서 가로질러 흐르고 있었다. 학교 밖 골목길에서는 호루라기 소리가 이따금씩 들리고 거리에는 점점 인적이 끊어지기 시작하였다. 토요일 오후 나른하게 서무실 빈 의자에 몸을 맡기고 일직을 하던 나는 창문 밖에서 들어오는 모습들이 실제 상황이라도 일어난 듯이 행동하는 세상의 풍경과는 거리가 멀다는 듯이 냉수 한 컵을 털어 부어 넣었다.
얼마 후 정적은 다시 이어졌고 나는 이리저리 발걸음을 몇 걸음 옮기며 약속이나 한 듯이 의자에 다시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 순간 눈에 들어오는 한 마리의 물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창문 밖에서 날아 들어온 것은 분명 풍뎅이였다. 이 도시에 아직도 이런 것이 살아 있다는 것을 의아해 하며 나는 그 물체로 인하여 잊혀진 기억이 하나 살아나기 시작했다.
가난한 시골의 한 작은 마을 모퉁이에 있는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일어나고 있던 일이었다. 3학년 같은 반 상민이라는 녀석이 7월이 막 접어든 오후 학교 운동장에서 풍뎅이를 가지고 돌리는 일이 습관처럼 되어 있었고, 그놈은 그것을 여간 재미있어 했고 또한 하나의 소일거리로 되어 버렸다. 그는 나를 그 실험 아닌 실험의 현장에 가길 원했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나는 그 자리에 몇 번 동참하곤 했다. 시골의 여름날에 나무와 풀숲에 특히 쇠똥에 많이 묻혀 있는 풍뎅이(일명 쇠똥구리)가 주 놀이 대상이었다. 어디선가 재주 있게 구해와서는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오독오독 다리 마디마디를 꺾어서 그 풍뎅이를 한 손에 쥐고 또한 한 손바닥으로는 땅바닥을 고르게 고른 다음 배가 하늘로 올라가게 하고 딱딱한 풍뎅이의 등을 땅에다 대어 완전히 풍뎅이를 뒤집어 놓고는 검지 손가락으로 그 풍뎅이 위에서 원을 그리며 풍뎅이가 돌아주기를 간구하는 주문을 외웠다.
"풍뎅아, 풍뎅아 돌아라. 풍뎅아 풍뎅아 돌아라. 돌면 날려 보내고 그렇지 않으면…." 하면서 계속 주문처럼 중얼대니까 풍뎅이가 발악을 하듯 돌아가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 끝을 따라서 처음에는 아주 천천히 날개를 펴서 천천히 돌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날아가고 싶은 풍뎅이의 솟구치는 욕망과 대단한 마술이라도 해냈다는 듯이 누런 이빨을 드러 내놓고 씩씩거리고 있는 서글픈 그놈의 치열한 공방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의 빡빡 밀은 머리 위로 여름 날의 태양은 뜨거운 응원을 보내는 듯 햇살은 내리쬐고 있었다.
나는 그 옆에서 처음에는 대단한 응원대장처럼 함성을 지르고 있었으나 점점 마음 속에 느껴오는 알 수 없는 무엇인가 밀려들기 시작했다. (그놈과 나는 매사에 라이벌이었고, 나는 그 당시 약간의 열등의식을 그에게 가지고 있었다.)
"너도 한 번 돌려봐라, 응 재미있다." 하고 손짓을 했으나 거절하고 말았다.
그때 갑자기 다음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운동장을 가로질러 왔을 때 그놈은 검은 고무신으로 누런 운동장 땅바닥을 날던 풍뎅이를 우지끈 덮쳐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교실 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가 남긴 자리를 바라보니 뱃속이 터져 나와 형체도 알아 볼 수 없는 시커먼 자국만이 남아 있었다. 본능처럼 빙빙 돌다 사라진 풍뎅이를 보며 나는 목젖 밑까지 치밀어 오르는 무언가를 느끼고 있을 때 어디선가 싸이렌 소리가 뜨거운 운동장 모퉁이에서 사라진 풍뎅이의 잠을 깨우고 있었다. 나도 어디론가 뛰기 시작했다.
살아남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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