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에 아버님께서 갑자기 뇌경색으로 앰블런스에 실려 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생겼다. 충청도 안면도 근처 시골에서 평생 농사만 지으시면 살아오신 아버지! 그간 몇 번의 중병과 잔병을 치르면서 버겁게 삶을 이어오시고 있지만 나름대로 가족들을 위해 한 평생을 기쁜 마음으로 당신의 삶을 희생하며 살아 오셨다. 병상에 누워계신 초췌한 아버지의 모습과 벗어놓으신 신발을 보는 순간 가슴이 울컥했다. 깊게 패인 주름과 뇌경색으로 손에 마비가 와서 굽어 펴지지 않는 한 쪽의 손과 거동이 불편한 행동, 무엇보다도 다 닳아 헤어지고 구멍이 뚫린 벗어 놓으신 구두의 밑창을 보는 순간 밀려오는 자식된 도리를 못다한 불효 막심한 내 모습이 한없이 미웠다. 그래도 그동안 구두를 몇 번이고 사드렸건만 왜 하필 다 떨어진 것을 신고 오셨을까? 아버지는 급한 중에 집에 있는 것 아무것이나 신고 올라 오셨다고 했지만 내 마음은 매우 무거웠다.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부모님 곁을 떠나와 학교에 다니면서 많은 향토장학금(?)과 용돈이라는 명목으로 부모님의 마음과 경제적 살림에 밑천을 몇 번이고 바닥을 내고야 말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까지 와서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그야말로 시골의 황소는 많이도 팔려 나갔다. 하지만 나는 그 때뿐, 시간이 지나고 용돈이 또 바닥 날 때까지 부모님보다는 나의 미래와 치열했던 80년대 초반의 나라를 걱정했고, 달콤한 낭만과 사랑의 열정을 앓고 있었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숭실고등학교 교사로 부임하고, 결혼을 하고 아들 딸 남매를 낳아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살기까지 열심히 그리고 앞을 보며 숭실에서 20년을 달려 왔다. 내 구두 밑창만 생각하며.....
1987년 때 이른 봄바람의 숭실 언덕에서 교사 초년을 긴장된 마음으로 시작했던 그 시간이 아직도 숭실에서의 초임시절에는 열정이 몽둥이를 들게 했다면 20년이 지난 지금은 학생을 위해 나를 매질하게 되었다.
20년 전에 학생들 앞에 섰을 때 소명심을 지닌 교사, 전문성을 갖춘 교사, 도덕덕인 인간이 되고자 나 혼자 마음 속으로 다짐하며 시작했지만 아직도 많은 것이 부족한 교사로 학생들 앞에 서 있는 지 부끄럽기 그지없다. 세 가지를 다짐하는 이유는 첫째, 하나님의 부르심을 가진 소명의식을 지닌 사람은 학생들 앞에 서는 목적 의식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또한 교사로서의 전문성이 없다면 그것은 무용지물의 인간에 불과할 것이다. 교사로서의 자기에 대한 전문가적 기질은 연구하게 하고 끊임없이 발전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그리고 도덕적이지 못하다면 나와 학생과 이웃에 대한 불신이 된다. 이 최소한의 세 가지를 지니고 앞으로도 살아 갈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제자의 주례를 세 번이나 서게 되었다. 제자들이 사회에 나가 취직을 하게 되고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것을 보면서 20년 세월의 흔적을 더듬게 되었다. 첫 제자가 38살이나 되었으니 말이다. 그동안 보잘 것 없는 나를 늘 좋은 것만으로 부어 주시고 가르쳐 주신 교장님 이하 모든 훌륭하신 선배 선생님들, 이번에 같이 20년을 맞이한 든든한 형같은 동료 선생님들, 그리고 후배 선생님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나를 늘 함께 해 준 후배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모든 선생님들에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내가 20년 전에 숭실에 올 때 70세가 가까웠던 연세에 교장님으로 계시던 이사장님 늘 감사드리며 더욱 강건하길 기도합니다.
무엇보다 20년 중 14번의 담임과 6년 간의 진학지도를 맡은 부장으로 있으면서 가르침을 받았던 제자들에게 특별히 고마움을 전합니다. 더욱 훌륭하고 사랑이 듬뿍 담긴 선생님을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 잘 지도해 주지도 못하고 잘 난 소리만 하지 않았는지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제자들이 있었기에 내가 발전할 수 있고 나도 더 많은 것을 배울 수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앞으로의 10년은 참으로 사랑으로 가르치는 교사가 되고 싶다. 그리고 나의 작은 소망은 먼 미래에 내 교직을 다하는 날 자식을 사랑하고 가족을 이끌어 왔던 아버지의 구두처럼, 나를 헌신하여 제자들을 사랑하며 가르쳤던 한 선생이 있었노라고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기를 기원해 본다.
오늘이 있기까지 하나님과 모든 분께 다시 한 번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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