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
"이 선생님 전화예요."
전화를 바꿔든 나는 언제나 변함없는 목소리에 편안함을 느꼈다. 불행이라고는 알지 못하고 자라난 여자의 목소리, 그 깍쟁이 특유의 아양이었다.
"그래 알았어, 이따 만나"
나는 전화를 끊었다. 아니 그녀가 먼저 전화를 끊어버렸다. 언제나처럼 수화기 안에서 일방적으로 금속성 소리가 먼저 났다.
'그래 이번에 아주 인사를 드려야지'
우리는 시골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나란히 앉아 그녀가 잠든 옆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콧날이 오뚝하고 솟은 것하며 그 누구도 그녀의 외모에 매력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없었다. 물론 나도 그러한 모습에 마음이 든 것도 하나의 이유라면 이유였다. 그녀를 유심히 바라다 보다가 머리 위에 있는 실내등을 끄고서 차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추수가 거의 다 끝난 들녘이라 썰렁하게 널려 있는 차창 밖이 왠지 마음에 들지 앉았다. 그녀를 다시 바라다보며 그녀와의 만남과 이 시골행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다.
그녀와 대학 4학년 초에 친구의 소개로 만나 지금은 결혼 문제로 시골 부모님께 인사도 드리고 시골 구경도 하려고 동승을 하게 되었다. 그녀는 대학생활 동안 언제나 명랑했고 커피와 샹송, 훌리오 이글레시스, 엘튼 존, 존레넌의 절규와 퀸의 신비스런 화음을 언제나 좋아했다. 그리고 그의 때묻은 전공 서적들, 롤랑 바르트, 가스통 바슐라르 등의 신비한 이름이 좋아 사랑하던 불어, 기막힌 발음, 불어 공부를 하러 다니던 알리앙스의 뒷길...
하지만 5시간 반의 여행, 그 시골행은 그녀에게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그녀는 죄수가 끌려가듯 억지로 가는 눈치였고 한편으로 상당한 호기심과 기대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고향에 당도했을 때 그녀의 행동은 서울에서는 보기가 힘들고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행동을 했다. 서울에서는 그처럼 빈틈없이 합리적이고 세련된 교양을 보여주던 그녀가 그처럼 이중적인 사고 방식을 보일 줄은 몰랐다.
"자기 부모님이 나를 마음에 들어 하실까?"
"그럼 물론이지, 우리 부모님은 내가 좋다고 하면은 무조건 좋다고 하실 분들이야, 그러니 걱정마."
상아빛 투피스를 입고 깔끔하게 단정된 그의 모습에서 점잖고 세련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해 보였고 그러한 그녀의 모습에서 나는 속으로 만족해 있었고 뿌득했다. 이 고향까지 내려올 때 버스안에서는 아무말이 없던 그녀가 갑자기 차에서 내려 고향집으로 걸어갈 때 그녀는 초조함을 못이기는 듯 계속해서 말을 붙여왔다.
고향집을 당도하여 막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어머니는 깊게 패인 주름살과 검게 구슬린 얼굴로 나와 그녀를 맞이했다.
"아이구 내새끼 오는구만!"
알록달록 꽃무늬 천으로 된 몸베를 입은 어머니와 그 뒤에서 머리를 빡빡깎고 얼굴에는 검정 숯을 묻히고 무엇을 하다 왔는지 땀을 흘리며 막내 동생이 나에게 달려들었다.
"형아다!"
"인사하지. 우리 어머니와 막내 동생이야."
그녀는 앞에 두 손을 모으고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꾸벅 인사를 하는 동생의 머리를 만지고 싶었으나 순간 허옇게 깎은 머리에다 땀을 흘리는 모습에 성큼 손이 가지 않았다. 어머니가 그녀의 소매부리를 잡아당겼으나, 내심 그녀는 투피스에 무엇이 묻을 까 심히 염려하면서 억지로 방으로 딸려 들어갔다.
"이 샥시구만, 내 자식한테 소식을 들었구만, 어여 방에 들어가, 이 촌구석까지 오느라고 수고가 많았어."
검다 못해 포도빛 색깔을 띠고 있는 얼굴과 그리고 입술은 두툼하고 검은 색채를 드러내고 있는 아버지께서 방안에서 그녀를 맞이했다.
그녀는 방안에 들어서자 이상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듯 미간이 좁혀졌고, 담배 냄새, 메주 냄새가 한꺼번에 풍겨오자 손을 코에 대려다가 내리고 말았다. 몇 년을 도배하지 않은 듯한 벽에는 농약회사에서 도린 달력 한 장이 일년을 토해 내고 있었고 군데군데 엉성하게 밥풀로 때워 기운 창호지가 누렇게 빛나고 있었다.
"이름이 뭐라고 그랬지?"
샥시 본관은 어디냐, 형제는 어떻게 되느냐, 아버지는 무얼 하시느냐, 이런 촌구석에 사는 것이 다 그러려니 이해해 달라, 이런 촌구석에서 아들놈 대학까지 공부시킨 것이 우리 집의 자랑이고 이 마을의 자랑이라고, 그리고 안정적이고 존경받는 선상"(선생)이 최고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밖에서 요란하게 음식 만드는 소리가 나더니 잠시 후 어머니가 상을 들고 들어오셨다.
"찬은 없지만 시장헐텡께 어서 많이 먹어."
상위에는 음식이 그릇그릇 가득가득했다. 큰 냄비 만한 그릇에 담은 것이
적게 보이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녀는 마지못해 숟갈을 들었지만 아무것도 먹지를 못했다. 전혀 음식이 입에 맞지 않을뿐더러 시각적으로 음식 맛을 돋구게 하고 있지를 못했다. 거무죽죽한 요리들,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단숨에 먹어 버렸다. 어머니의 구수한 맛을오랜만에 나는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나의 모습과 아버지의 누런 이를 드러내고 식욕왕성하게 드시는 모습을 보자 더욱 비위가 상한 것 같았다.
"좀, 듬뿍듬뿍 들어봐라."
하지만 그녀는 그 퀴퀴한 방안의 분위기와 동생들의 추한 몰골로 밥을 먹는 모습 등 그 식단에 입맛이 전혀 나지를 않는 듯했다. 어버지는 식사를 다 하시고 밥사발에 한 주발의 물을 따라 드시고 트림을 하신 뒤에야 물러 나셨다. 그때까지 고양이 밥먹듯 밥풀 몇 개를 입에 집어 넣던 그녀도 숟가락을 놓았다.
밥을 먹고 얼마 후에 동네 어른들이 이 집 어른들이 이 집 선상님 며느리가 왔다고 구경들 오셨다. 오후 내내 친척 분들의 인사와 고향 친구들의 해후, 그녀는 잘 견뎌 주었다. 친구들과의 막걸리 파티와 뽕짝 메들리...
그 다음날 서울에 올라 올적에는 아버지가 어디서 차를 잡아 오셨는지 택시를 마을에서부태워 정류장까지 왔다. 나는 버스에 올라타서 우리 마을 에 대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아니 그것은 내 자신에 대한 변명이었는지 모른다.
"우리 마을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하나도 없어, 있다면 새마을 운동 후반기의 바람이 이 시골 산간 마을에도 불기 시작한다 이거지."
"이 시골을 좋아하세요?"
그녀의 물음에 나는 어떻게 설명할까 잠시 망설였다.
........
우리는 고속버스에서 휴게소까지 오는 동안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휴게소에서 간단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서울에 도착하자 그녀는 다시 평소의 단정함과 정숙함, 엘리트한 모습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후 나는 그녀에게 단 한 번도 고향 이야기를 하지를 않았다. 그녀도 묻지 않았다. 고향, 그녀의 머릿속에는 고향집의 모습, 어쩌면 그토록 어둡고 추레할 수가 있을까? 기미가 끼고 갈라진데다가 누런 군살이 박힌 그 넓적한 손으로 닭다리를 쥐고 있던 아버지를 기억해 낼 것이다. 또한 그녀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이 남자와 결혼을 하면 무엇이 좋아질까? 먹고 사는 것은 넉넉할까? 장남, 계속 집안 일에 신경을 써야 하구. 얼마나 귀찮은 일일까, 또 언젠가는 그 부모님을 모셔야겠지···.또한 그 고향 친척들과 한 집안이 되어 산다고 생각하니…….
역시 예감은 맞아 떨어졌다. 고향을 다녀 온 몇 주일 뒤 장문의 편지 한 통으로 만남은 그렇게 끝이 났다.
"어쩔 수 없나봐요, 저는 안되겠어요."
나는 갑자기 초등학교 때 상민이 녀석이 풍뎅이를 돌리다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나자 발바닥으로 구 풍뎅이를 질끈 밟고서 교실로 향해 달리던 그 모습이 생각이 났다. 운동장에 깔려 있던 그 풍뎅이가 갑자기 나와 같은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자 나는 부모님이 있고, 빡빡 깍은 머리통이 하얀, 동생들이 있는 고향집으로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이 병든 도시를 탈출하기 위하여….
아니 살아 남기 위하여….
또 다른 꿈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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