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미인곡 思美人曲

이 몸이 태어날때에 임을 따라서 태어 나니 한평생의 연분이며 하늘이 모를 일이던가. 내가 오직 젊어 있고 임은 오직 나를 사랑하시니 이 마음과 이 사랑을 비교 할 곳이 전혀 없다.
⇒ 서사 1 - 임과의 인연

평생에 원하기를 임과 함께 살아가고자 했는데 늙어서야 무슨 일로 외따로 두고 그리워하는가. 엊그제 임을 모시고 광한전에 올라 있었는데 그 사이에 어찌하여 이 하계에 내려왔느냐. 임을 떠나 올적에 빗은 머리가 헝클어진지 삼년 일세. 연지와 분이 있지마는 누구를 위해서 예쁘게 화장할 것인가. 마음에 맺힌 시름이 겹겹이 쌓여 있어서 짓는 것이 한숨이요 떨어뜨리는 것이 눈물이라. 인생은 한이 있는데 시름은 끝이 없다.
⇒ 서사 2 - 임에 대한 그리움

아무 생각이 없는 세월은 물 흐르듯 빨리 지나가는구나. 더위와 추위가 대를 알아서 가자마자 다시 오니 듣고 보는 가운데서 느낄 일이 많기도 많구나.
⇒ 서사 3 - 세월의 무상함

봄바람이 문득 부어서 쌓인 눈을 헤쳐내니 창 밖에 심은 매화가 두세 가지 피었구나. 가뜩이나 쌀쌀하고 담담한데 그윽하게 풍기는 향기는 또 무슨 일인가 황혼에 달이 따라와 베갯머리에 비치니, 흐느껴 우는 듯 반기는 듯하니 임이신가 아니신가. 저 매호를 꺾어 내어 임 계신 곳에 보내고 싶다. 그러면 임이 너(매화)를 보고 어떻다고 생각하실까?
⇒본사 1 - 춘원(春園)

꽃이 지고 새 잎에 피어나니 녹음이 우거졌는데 비단 포장이 적막하고 수놓은 장막이 텅 비어 쓸쓸하다. 연꽃을 수놓은 비단 휘장을 걷어 놓고 공작을 수놓은 병풍을 둘러 치니, 가뜩이나 시름이 많은데 날은 어찌 그리 길던가. 원앙새 수놓은 비단을 베어 놓고 오색실을 풀어내어 좋은 자로 재어서 임의 옷을 지어 내니, 솜씨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격식도 갖추었구나. 백옥으로 만든 함에 달아 산호로 만든 지게 위에 얹어 놓고 임에게 보내려고 임 계신 곳을 바라보니 만 리나 되는 먼 길을 누가 찾아갈 것인가? 가면은 함을 열어 놓고 나를 본 것처럼 반가워하실까?
⇒ 본사 2 - 하원(夏怨)

하룻밤 서리가 내린 무렵에 기러기가 울며 지나갈 때 깊은 누각에 혼자 올라가 수정으로 만든 발을 걷으니, 동산에 달이 떠오르고 북극성이 보이므로 임이신가 하여 반가워하니 눈물이 절로 난다. 밝은 달을 잡아 내어 임 게신 곳에 보내고 싶구나. 임께서 그 달을 누각 위에 걸어 놓고 온 세상을 다 비추어 깊은 산 골짜기까지도 대낮같이 밝게 하소서(밝은 정치를 베푸소서).
⇒ 본사 3 - 추원(秋怨)

하늘과 땅이 꽉 막힌 것처럼 흰 눈으로 온통 덮여 있으니 사람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날아다니는 새도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소상강 남쪽 지방같이 따뜻한 이 곳도 추위가 이러한데 하물며 임 계신 북쪽 지방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따뜻한 봄볕을 부쳐 내어 임 계신곳에 쏘이고 싶다. 초가집 처마에 비친 해를 임 게신 곳에 올리고 싶다. 붉은 치마를 여미어 입고 푸른 소매를 반쯤 걷어 해질 무렵 대나무에 의지하여 여러가지 생각이 많기도 하구나. 짧은 겨울 해가 이내 넘어가니 긴 밤을 꼿곳이 앉아서 청사초롱을 걸어 둔 곁에 자개 입힌 공후를 놓아 두고, 꿈에나 임을 만나 보려고 턱을 받치고 기대어 있으니 원앙 금침도 차기도 하구나, 이 밤은 언제 샐것인가.⇒ 본사 4 - 동원(冬怨)

하루도 열두 때, 한 달도 서른 날, 잠시라도 생각을 말아 가지고 이 시름을 잊으려 해도, 마음 속에 맺혀 있어서 뼛속까지 사무쳤으니 편작 같은 명의가 열명이 온다 한들 이 병을 어찌할 것인가. 아아 내 병이여, 이 임의 탓이로다. 차라리 죽어서 호랑나비가 되리라. 꽃나무 가지에 가는 곳마다 앉으며 돌아다니다가 향기 묻은 날개로 임의 옷에 앉으리라. 임께서 나인 줄을 모르신다 해도 나는 끝까지 임을 따르려 하노라
⇒ 결사 - 임을 향한 변함 없는 마음

감상의 길잡이

작가가 50세 되던 해에 반대 정파의 탄핵을 받고 고향이 전남 창평으로 물러나 우거(寓居)하면서, 임금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여인이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는 심정에 의탁하여 부른 노래이다. 이 작품의 제목인<사미인곡(思美人曲)>은 중국 굴원이 지은<이소(離騷)>의 제9편에 나오는 '사미인(思美人)'이라는 편명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며, 그 작품 역시 충군(忠君)의 내용을 담고 있어 내용 또한 그 영향을 받은 것으로 짐작된다. 또 임금을 임의로 설정하여 노래한것은 고려 속요인 <정과정>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으며, 임에 대한 헌신적 사랑의 표현은 <가시리>,<동동> 등과 접맥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속미인곡>과 더불어 가사 문학의 극치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일찍이 서포 김만중은 <사미인곡>,<속미인곡>, <관동별곡>을 가리켜 '좌해진문장 지차삼편(左海眞文章之次三篇 : 우리 나라의 참된 문장은 오직 이 세 편 뿐이다.)' 라고 하였다. 이 노래는 서사, 본사, 결사, 세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본사는 다시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뉘어 있다.